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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가타 미나마타병 제3차 소송의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내가 알고 있는 니가타현 아가노시에 사는 니가타 미나마타병 미인정 환자 T씨가 1월 초 사망했다. 향년 91세. 과거 전쟁에서 한 쪽 다리를 잃었으며, 작은 낚시 도구점을 하는 배우자 K씨와 같이 근근이 생업을 이어 세 딸을 키운 분이다. 의족을 하고도 오토바이를 요령 좋게 몰고 다니고, 리어카를 끌고 장난감 노점상 등을 하기도 했다. 가게는 낚시 동아리의 정보교환의 장으로 쓰였으며, 그도 아가노 강에 낚시하러 가서 새로운 정보를 제공하기도 했다.
강 언저리의 이웃마을에서 시집 온 배우자 K씨도 그곳의 민물고기를 다량 섭취했다. K씨가 먼저 미나마타병이 발병해 인정 신청했지만 기각되었고, 그 후 행정 가처분 신청을 내면서 제2차 소송의 원고단 부단장으로 활동했다. 그러나 T씨는 상이군인회의 임원 등의 일이 있어 신청을 하지 않았다. 이후 K씨의 권유로 가까스로 신청하지만 대학 검사에서 굴욕적인 취급을 받은 것에 분노하여 도중에 그만두고 말았다.
작년 말, [제3차 소송의 움직임이 있으니 협력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며 니가타에서 가장 많은 미나마타병 환자를 진찰하는 S의사에게서 연락이 왔다. 위의 T씨처럼 검사를 도중에 멈춘 사람, 공무원이었기 때문에 퇴직할 때까지 신청하지 못했다는 사람, 딸이 시집갈 때까지 참아왔던 사람 등, 내가 30여 년 전에 들었던 이야기와 비슷했다.
과거에 두 번이나 큰 재판을 경험하면서 나름대로 해결해왔던 니가타 미나마타병. 새삼스럽게 잠재된 환자들이 있다는 실정에 한숨이 나온다. 구마모토현의 미나마타시에 비해 원고를 희망하는 사람은 아직 10명 정도에다 변호단도 지원자도 의지할 데 없어 불안하지만, 바로 눈앞에서 괴로운 결단을 내린 피해자가 있기 때문에 꼭 지원을 해주길 바란다.
언제나 미나마타에 비하면 니가타는 가볍다는 등 차별을 받아왔지만, 이번 3차 소송의 움직임의 지역 신문 1면 톱 기사 게재, 인정 심사회 재개의 임박, 나라의 인정 기준에 얽매이지 않고 최고 재판 결정을 존중하고 싶다는 현 지사의 발언, 환경부와 같은 간담회의 니가타 개최 등으로 갑자기 주목의 대상이 되었다. 매스컴의 그늘에서의 움직임도 활발해져 일부러 미나마타 현지에서도 보도차가 달려와 떠들썩하다.
지금까지 환자 모임에서 활동했던 나는 개인적으로도 [니가타 새롭게 만들기]의 일환으로 NPO 협회의 사람들과 현의 유역 박물관 사업 등에 참여하는 등 본업(건축)에 지장이 생길 정도로 바쁜 나날을 보내게 되었다. 그렇지만, 그 와중에도 또 하나 ‘아가노 강변에서 와타라세에 지장보살을 보내는 모임’이란 새로운 운동도 모색하고 있다.
그 옛날, 현과 현의 경계인 쿠사쿠라 구리 광산(구 니가타현 카노세마치)에서 재산을 모았던 후루카와 이치베는 토치기현의 아시오 구리 광산에서 재차 공해를 일으켰다. 광독사건에 맞선 다나카 쇼우죠 옹의 장례식 때는 구 니가타현 야스다마치가 낳은 역사지리학자 요시다 토오고가 추도 연설을 의뢰 받았다. 그로부터 100년 후, 니가타 미나마타병 환자들과 같이 시공을 뛰어넘어 다시 지장보살을 통해 그 인연을 찾게 하고 싶다는 기획인 것이다.
물론, 5월 4일 행사 예정인, 영화 [아가노에 살다] 15주년 추도 집회 [아가노 강변에서]도 준비하고 있다. 재판이든 현 사업이든, ‘그래도 아가노 강 옆에 살아서 좋았다’라고 사람들이 저승길에 올라서도 즐겁게 얘기할 수 있게 만드는 운동을 계속해서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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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니가타 미나마타병 간담회에서 인사하는 현 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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