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을 동아시아 환경시민회의를 향해 니가타(新潟)에서 연재 리포트를 전달합니다
아가노가와(阿賀野川) 근처의 논은 맑게 흐르는 물로 자라서 파란색이 퍼져 있는 모습은 바라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편안해진다. 아가노가와의 사계절은 계절마다 매력적이지만 나는 이 계절을 가장 좋아한다.
내가 사는 야스타마치(安田町, 합병해서 지금은 아가노시)는 강어귀에서 약 30km 상류로 농업 중심의 인구 약 1만 명, 나는 이 마을에서 1950년에 목수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중학교 3학년이었던 1965년 6월, 처음으로 니가타 미나마타병이 공표되었다. 구마모토 미나마타병이 공표되고 9년이 지난 일로 같은 잘못이 재차 반복된 것이다.
당초에는 니가타 미나마타병이 아닌 아가노가와 유기수은 중독 사건이라고 보도되었다. 2년 후 1967년에는 하류지역에 사는 3세대 13명이 60km 상류의 쇼화전공을 상대로 니가타 법원에 재소, 니가타 미나마타병 제1차 소송이 된다. 이것을 계기로 구마모토와 환자의 교류가 시작되고 구마모토에서도 재소되었다. 그 후 미에현 요카이치시의 대기오염에 의한 요카이치 천식, 토야마현 진쓰강 유역에 발생한 카드뮴에 의한 수질오염의 이타이이타이병 2개가 더해져 4대공해병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일본이 공해 문제로 패닉상태에 빠지는 시대이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오히려 싫은 가업인 목수를 이어가지 않으면 안 되는 중요한 문제였다. 20살 경부터 가출 흉내를 반복해 1971년 연말에 질소 본사 교섭에 구마모토에서 상경해 있던 환자 운동의 리더 고 가와모토 테루오씨와 우연하게 만났다. 니가타 현황을 물었지만 전혀 대답할 수 없었다. 당시에는 아직 야스다마치에서 미나마타병 중독자는 나오지 않고, 하류지역에서 발생한 다른 사람들의 일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니가타의 환자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가와모토씨에게 들은 적도 있지만 무엇을 해야 좋을지 짐작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71년 9월에 제1차 소송이 원고인 환자 승소가 되었다. 쇼화공전이 원인 기업이라는 사실이 명확해진 다음해 1월, 비로소 중ㆍ상류 지역에서도 인정환자가 나왔다. 우선 그 인정환자의 이야기부터 듣기 시작했지만 ‘미나마타병에 대해서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라고 문전박대도 당해서 어렸던 나에게는 충격이었다. 그래도 ‘차 한 잔 하러 또 와’라고 말해주는 환자도 나타났고, 결국에는 점심을 먹거나, 밤에 반주까지 곁들이는 관계까지 되었다. 그래서 지금 돌이켜 보니 37년이 지나 있었다.
인연이 되어 올해 10월, 제4회 동아시아 환경시민회의를 니가타에서 개최할 수 있게 되었다. 각국의 여러분을 맞이하는 현지의 한 사람으로서 본업인 건축 대신 환자에게 다가간 것을 알리고 싶다.
|

아가의 고기잡이

아가노가와의 강변
|